수유너머N웹진
[ 19~20세기 예술과 모더니티 고봉준 선생님 인터뷰] - 개강일 3월 5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모더니티로 들어가는 입구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는다!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이 2012년 야심차게 마련한 불온한 인문학 인문사회과학 연구원 프로젝트!
이번 커리큘럼에는 이 시대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문화 예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놓칠 수 없는 텍스트가 있다.
바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아케이드, 광고, 산책자, 영화, 사진, 패션, 유행 등!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치지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은 현상을 분석함으로서
자본주의라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발터 벤야민!
그가 13년 동안 전념해왔지만,
시대와 불화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탓에
미완성으로 끝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는다!
강좌를 앞두고,
문학 평론가 고봉준 선생님에게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어떤 책이며
현재 모더니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습니다!

강의 제목이 19~20세기 예술과 모더니티인데요. 선생님이 모더니티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계시는 이유가 있다면요?
현재 우리가 경험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정신적 조건들이 완숙한 형태로 자리를 잡은 것이 19세기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오늘 아침에 저는 세탁소에 들러서 겨울 옷 몇 벌을 드라이크리닝 맡겼는데요, 드라이크리닝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한 염색공장에서 청소를 하던 하녀 한 명이 실수로 염색테이블에 등유를 엎지르는 바람에 발견된 것입니다. 염색약이 묻어 있던 테이블보에 등유가 닿자 기름이 닿은 부분만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고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드라이크리닝의 원리이죠.


드라이크리닝만이 아닙니다. 영화, 근대소설, 사진, 백화점, 철도, 철골건축, 대로(大路)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명적인 것이 제 모습을 갖춘 것 또한 19세기죠.
흔히 ‘대도시’의 등장과 맞물려 있는 이러한 문명적인 것은 이후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19세기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물질적 기반의 기원을 19세기에서 찾아보고, 그것들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보려는 맥락에서 ‘모더니티’에 주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더니티라는 제목 아래 공부할 책이 한 학기 동안 발터 벤야민의『아케이드 프로젝트』인데요.
일단 벤야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생각하는 사람은
시대를 앞서간 매체이론가로,
혹은 <모스크바 일기>나 <베를린 연대기> 같은 작품의 이미지 때문에 벤야민을 낭만적인 멜랑꼴리한 사상가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고요.
<역사철학 테제>, <폭력비판을 위하여> 같은 묵직한 글을 통해서
벤야민의 사유를 접한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에게 벤야민은 어떤 사상가인지요?
우선, 벤야민은 저에게는 매력적인 문장을 쓰는 사상가입니다. 다음으로, 저에게 벤야민은 동시대적인 현상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직관적으로 고찰하는 뛰어난 사상가입니다. 대개의 거인(巨人)들이 그렇듯이 벤야민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러 개입니다. 그러나 이번 강의에서 그 모든 입구들을 섭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필요에 따라, 그리고 저와 강의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입구의 수가 결정될 것입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어떤 책인가요? 미완성이라 어렵다는 소문도 많지만, 그만큼 꼭 읽고 싶다는 도전의식도 생기는 커리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렇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한 권의 완성된 저작이 아닙니다. 완성을 위해 모아놓은 자료들의 묶음이자, 그 자료들에 관한 메모의 덩어리죠.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정해진 ‘정답’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자료들, 벤야민이라는 사상가가 만들어놓고 죽은 자료들로 우리가 어떻게 19세기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체계를 갖춘 저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여백이 많은 서류들을 짜맞추어 보면서 자료를 수집했던 사람의 생각을 추측해보는 일도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벤야민 책을 한 번쯤 펼쳐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처음 벤야민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벤야민 특유의 글쓰기 스타일. 이를테면 표제와 본문의 사유가 어긋난다던가. 방대한 인용문들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 분들도 많을 거 같습니다. 이번 인사원 과정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벤야민이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나오는 모든 자료들을 이용하여 방대한 책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자료를 모으는 일과 그것을 책으로 쓰는 일은 다른 것이죠. 벤야민의 글쓰기 스타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은 특정한 텍스트에 한정되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초기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같은 책이 그렇지요. 이 책은 철학에 빠져 있던 초기, 그것도 학위논문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잔뜩 힘을 주어 써서 어렵습니다.
1937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의 벤야민. 1930년대의 대부분을 바로 이곳에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위한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지만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엄밀한 의미의 ‘책’이 아니기에 글쓰기의 스타일이나 문체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벤야민의 후기 글들은 결코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명징하기 때문에 그 이면에 무언가 신비로운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벤야민의 글은 매우 어렵게 느껴지지요.
오히려 우리가 함께 읽을 책은 매우 정합적인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쓰여질 예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벤 야민의 글들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거나 표면적인 의미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올바른 독법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그 사이 어디쯤이 벤야민의 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사 : 고봉준
70년생.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나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루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다. 문예철(문학-철학-예술)를 넘나드는 책 읽기를 좋아하며, 언젠가 이것들을 횡단하는 방식의 글쓰기에 도전해보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시에 관해서 관심이 많으며, 현재 수유너머N ‘미학과 정치’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평론집으로는 <유령들>,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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