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N웹진
낯선 감성과 몸짓, 현장 예술 유혹적 투쟁
[36호] 2011년 09월 08일 (목) 13:27:47 박은선
“당신을 유혹하는/ 매력 만점 철거 농성장/ 사랑과 연대 저질러놓고, 저질러놓고….”
철거 농성장 두리반이 낳은 스타밴드 중 하나인 ‘멍구밴드’가 두리반 투쟁 중에 만든 <매력 만점 철거 농성장>의 후렴구이다.
이 가사처럼 두리반은, 그리고 명동 마리는 매력 만점의 철거 농성장이 되었다. 두리반 투쟁의 승리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리반이 하나의 ‘사건화’가 된 것이고, 거기에는 예술가들의 자발적 참여가 결정적이었다. 두리반은 철거 농성장이자 자유로운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창조적 생산을 일궈내는 하나의 코뮌이었다. 두리반에서는 매주 화요일 ‘푸른 영상’이 독립영화 상영회를 열었고, 목요일에는 ‘작가회의’가 시 낭송회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각각 ‘칼국수음악회’와 ‘자립음악회’라는 이름으로 인디밴드들이 콘서트를 했다. 뿐만 아니라 길가에 스피커를 놓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도시영화제, 여러 종류의 세미나와 강의, 그리고 뒷마당에서는 컨테이너 갤러리 ‘스페이스 모래’가, 51+ 음악 페스티벌이, 벼룩시장이, 카페가 끊임없이 열렸다가 사라졌다.
두리반의 ‘사건화’, 그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침침한 철거 투쟁장을 뜨겁고 개방적인 예술의 장으로 바꾸었다. 철거 문제나 사회 부조리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이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문턱을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 명동 마리 철거 투쟁장에서도 활동 중인 ‘주온’은 칼국수음악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두리반에 연대하게 되었고, ‘성수’는 51+ 음악 페스티벌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가 “잘 곳도 있고, 밥도 주고, 장소가 홍대 앞인 것이 좋아서” 그날부터 1년 동안 두리반에 거주하게 되었다.
두리반 철거 농성장이 인디음악·예술·문화의 장소가 된 것처럼, 지금 전국의 운동 현장에서는 그 운동을 사건화하고 과정을 즐기기 위해 예술과 긴밀한 호흡을 한다. 여기서는 단순히 재미를 더하기 위해 콘서트나 전시를 삽입하는 정도가 아닌 음악가, 미술가 혹은 예술적 행위를 하는 여타 모임이 적극적으로 운동을 기획하고 창조한다. 운동가들이 행사를 기획하고 그 기획에 따라 도움을 주는 식의 참여와는 적극성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 지금 명동 철거 투쟁장에서는 콘서트와 전시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스페이스 모래’의 4대강 반대 전시, 독립영화 감독들의 4대강과 내성천에 관한 다큐멘터리 ‘강원래 프로젝트’와도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또 팔당 유기농부들과 연대해 직접행동과 전시, 콘서트를 지속적으로 기획한 ‘에코토피아’는 오는 10월에 있을 4대강 그랜드 오픈에 맞불을 놓기 위해 ‘두물머리 강변 가요제’를 기획하고 있다. 이런 예술 행동은 관객을 계몽하기보다는 함께 즐기고 사유하며 공감하기를 원한다. 여기에는 예술을 만드는 고상한 예술가나 그것을 향유하는 관객 따위의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런 소용도 없는 잉여적 존재라는 것을 선언하고,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이런 공작들은 온건한 삶을 구축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던 개체들에게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삶 외의 것을 상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출몰한다, 즐긴다, 공감한다
‘비폭력 직접행동 예술’ 생산의 주체들은 대부분 20~30대로서 노무현 정권 때 대학을 다닌 세대, 88만원 세대, 촛불시위와 용산, 두리반을 경험한 세대이다. 즉 비정규직·비물질 노동 세대이다. 무한경쟁 구도의 인간답지 못한 삶에 대한 거부, 자본에 포섭되는 예술에 대한 의문 제기, 그리고 촛불시위 이후의 박탈감과 해방에 대한 갈증이 간접적 원인이다.
프랑스 68혁명이 그랬듯이 촛불시위는 단기적 결과물로 얻은 것이 많다고 보기 힘들지만, 도로를 점거하고 광장을 지배한 경험이 중요한 학습이다. 당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도로를 횡단하며 규율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스스로 준비해온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자신을 표현했다. 특히 깃발 아래 대오를 맞춰 질서정연하게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앉아 아는 노래를 그야말로 막 부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연대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열사들의 죽음에 대한 부채 의식을 지고 투쟁하던 진정성 시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다중이고, 새로운 감수성의 탄생이었다. 비장미는 전혀 없었지만, 이처럼 느슨한 연대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접적 행동으로 극복하려는 적극적 의지였다. 타인을 해방하러 온 것이 아닌 자신을 해방하러 온 자들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자율적인 투쟁 방식, 웃고 떠들며 노래하는 방식은 운동의 감각을 바꿔놨으며 많은 이들을 휘말리게 했다.
<8월 3일 마리 재탈환의 순간>, 2011-랜디
촛불시위 때 경험보다 중요한 동인이 된 것은 촛불시위 이후 정부의 폭압에 여실히 드러난 시민단체와 이른바 진보세력들의 허약한 구조에 대한 직시였다. 거의 모든 진보운동단체들과 예술단체들이 국가보조금에 의지하던 탓에, 촛불 공안정국 이후 칼바람에, 또 4대강 토목사업과 부자감세로 인한 복지·예술 지원금 삭감에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했다. 정권을 체계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시스템도 거의 정지된 듯했다. 게다가 4대강으로 대표되는 생명 파괴 문제, 여성 문제, 소수자 운동, 비정규직 투쟁과 긴밀하게 연대하지 못하는 기존 노동운동의 비유연성은 진정성의 시대를 살아온 선배들에 대한 신뢰를 잃게 했다. 천박하게 재벌만 옹호하는 정부 때문에 구조적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용산·4대강·쌍용자동차·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고통이 전면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 어떤 진보단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능은 상실했다. 이런 상황은 20~30대 예술가들이 허탈함을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공동체(자율적이고, 물리적으로 작아 구조적으로 자본과 국가에서 독립적일 수 있는)를 만들어 행동하게 하는 동인이었다. 때문에 두리반이나 두물머리는 철거민을 해방하고, 농민을 해방하는 현장이 아닌 자신의 해방구로 존재했다.
해방시키기가 아닌 스스로 해방되기
비폭력 직접행동 예술의 결과물은 상이하지만 자율과 자유, 반자본, 반권위주의, 공동체주의라는 확고한 공통의 지향점이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 예술은 포스트포디즘의 아포리아에 반하는 현상이다. 포스트포디즘 시대에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모든 상품화 과정에 창조성을 부여해야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고, 노동자의 개성과 주체성까지 가치의 생산 내부에 포함시킨다.(1) 비폭력 직접행동 예술 움직임에 동참하는 주체들은 노동자의 창조성을 상품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개인의 주체성과 창조의 에너지로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려는 욕망이 있다. 또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스펙 외에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자기계발 체제에 대한 구체적 저항이다.
두리반 투쟁에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자립 음악가들이었다. 두리반은 그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자리였다. 인상적인 점은, 두리반을 점거하는 동안 관객으로만 콘서트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두리반 투쟁이 끝날 무렵에는 삼삼오오 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설가 유채림씨도 투쟁 중 드럼을 배워 ‘섭섭해서 그런지’라는 밴드를 만들어 여러 번 공연했고, 최근 투쟁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무키무키 만만수’도 처음에는 관객으로 시작했다. 두리반을 통해 성장한 음악가들은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을 만들었고, 자립음악 운동은 단순한 생산자 운동 차원을 넘어 음악을 만드는 이와 듣는 이의 구분 없이 모두가 문화적 순환을 향유하는 주체로서,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문화활동을 지향하며 많은 이웃들과 음악을 나누고 있다.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리슨투더시티’가 만들어진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리슨투더시티는 예술이 교환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며 순수미술, 디자인, 건축가, 시민이 함께 도시와 예술의 가치를 탐구하는 ‘자유로운 개인의 자발적인 창작 공동체’를 지향한다. 리슨투더시티는 특히 개발 독재의 감수성을 ‘88만원 세대’도 갖는 모순에 주목한다. 이런 기이한 마음의 풍경을 함께 이야기하러 청계천의 녹조를 구경하는 녹조 투어, 유일하게 남은 아름다운 모래강 내성천 투어를 구성해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4대강 공사 소송 중 유일하게 승소한 ‘두물머리’의 유기농부들과 함께하는 생태예술공동체 ‘팔당 에코토피아’는 서울 사람들에게 두물머리의 ‘불복종 텃밭’을 분양한다. 흙을 밟고 함께 농사짓는 기쁨을 나누며, 수확물을 함께 거두어 팔기도 한다. 지난 5월 직접 경작한 유기농 딸기로 ‘스페이스 모래’에서 ‘딸기잼 만들기 농성’을 했다. 딸기잼의 달콤한 향기에 이끌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물머리의 상황과 주말농사꾼 모집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이런 창조적 활동은 점점 그 폭과 층을 넓혀가며 ‘예술-삶-노동’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창조기능적 장치들이 충분히 창조적이지 못하고 즐겁지 못하다면, 관객은 공동창작자가 아닌 관객으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진정성을 타자에게 강요하는 윤리적 주체로 전락하고 만다.
예술-삶-노동의 경계를 허물다
두리반에서 성장한 음악가들과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한진중공업, 명동 재개발 구역, 포이동, 재능 농성장, 4대강과 내성천을 오가며 즐겁게 자신을 표현하며 이웃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유혹한다. 명동 재개발 구역 마리에서 8월 3~4일 48시간에 걸쳐 용역 깡패 150명이 철거민과 연대하러 온 세력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중간중간 긴박한 대치 상황에서도 마리에 연대하는 사람들은 부서진 집기 속에서 덜 부서진 악기를 찾아 삼삼오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제 대치했느냐는 듯 신나게 노래하는 이들을, 덩치 좋은 용역 깡패들은 질렸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들을 무력하고 초라하게 만든 것은 자본과 국가가 사주한 폭력에 저항하는 순간을 즐기는 자유로운 자들의 해방의 정신, 일당의 노예가 된 그들이 누릴 수 없는 자의 해방감이었다.
예술이 원하는 것은 권력 쟁취가 아닌 권력의 해체이며, 자기 해방을 위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임을 우리는 매 순간 느낀다.
강정마을, 포이동, 재능 농성장, 4대강, 명동 재개발 구역, 유성 기업, 콜트·콜텍 노동자, 롯데 청소노동자…. 지금 한국은 전쟁터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의 뱃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정권이 바뀐들 몇몇 투쟁이 승리를 거둔다 한들 자본과 국가의 압제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술은 이 거대한 괴물의 뱃속을 찢고 나갈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함께할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의 ‘이미 알려진 일’(News From Nowhere)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한다. 그것은 120년 전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격려이자 당부이다.
“살아 있는 동안 당신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동시에 자신의 참된 삶도 전혀 돌보지 않는, 즉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삶도 증오하는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될 겁니다. 자, 돌아가세요. 그리고 우리를 보게 된 것에 의해 당신은 당신의 고투에 약간의 희망이라도 더했으니 좀더 행복해하십시오. 설령 어떤 고통과 노고가 필요하다고 해도 우정과 평안, 그리고 행복의 새로운 세대를 건설해가기 위해 분투하면서 살아가십시오.”(2)
글•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각주>
(1) 마우리찌로 마짜라또 등, <비물질 노동>, 갈무리, 185쪽.
(2) 윌리엄 모리스, <에코토피아 뉴스>, 박홍규 옮김, 필맥, 35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