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티카 세미나에 대한 후기.

또는 슬픔의 정서가 담긴 에세이.

 

안녕하세요. 종윤입니다. 세 번째 에티카 세미나에 대한 후기를 올립니다. 후기를 쓰면서 좀 더 면밀하고 성실하게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것, 몽사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는 어떤 내용에 대하여 나름 타당한 관념을 갖게 되었기에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혼란스러운 인식인 것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텍스트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고 나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적극적으로 개념들을 사고해야 겠다는 다짐, 보다 활발하게 능동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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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세 번째 세미나에서는 제 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 정리36 까지의 내용을 다루었다. 1부에서는 주로 실체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오늘 다룬 2부의 전반부는 실체의 변용로서, 실체를 구성하는 두 속성과 관계하는 양태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였다. 또한 정리 19부터는 인간의 정신이 혼란스러운 관념을 형성하는 것, 즉 인간의 정신이 인식에 있어 저지르는 오류에 대한 설명과 증명을 다루었다. (이하 서술에서는 스피노자적인 개념과 그것의 용법을 의도적으로 다양하게 변용하여 작성해 보겠습니다.)

 

먼저 보조발제를 맡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신과 신체, 그리고 다양한 개물들이 계열을 이루어 발제문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산출해내지 못했는지를 이야기하고 다른 학인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유너머N과 인연을 맺은 8개월 동안, 칸트 세미나, 발리바르 세미나, 노마디즘 세미나 등에 참여하면서 나름 어렵다는 철학 텍스트들을 독해하면서 많은 발제문을 작성하였지만 에티카에 대한 보조발제를 작성하는 순간이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르기아스가 제시한 세 가지 아포리아 중 두 가지를 응용하여 나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에티카라는 텍스트에 내가 해석해야 할 내용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이성적으로)인식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지라도 나는 발제문을 작성함으로써 그 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다.” 신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1부에 대한 독해는 다른 철학자들의 텍스트나 2차 해설서 등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이 다루는 실체형이상학의 논의에 대한 조야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개념들과 비교하면서 보다 세부적인 내용들에 접근해가는 방식으로 해석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부는 양태론과 관계된 스피노자의 심신론과 인식론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정도의 이해, 간단한 2차 해설서에서 다루는 스피노자의 인식론에 대한 설명까지만 이해할 수 있었을 뿐, 세부적인 내용들은 나에게 인식의 혼란만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이성의 역량으로는 나의 신체가 텍스트라는 외부물체로부터 자극을 받음으로써 감각에 의해 성립된 표상들에 합리적인 이성적 질서를 부여할 수 없었으며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인식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혼란스럽기만 하다면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세미나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 발제문을 작성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것은 혼란스러운 인식에 대한 관념의 관념마저 혼란스럽다는 것, 즉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겠다는 것이었던 것 같다. (무지의 계열적 연쇄는 여기서 다시한번 작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겠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T_T

 

많은 고민 끝에 발리바르 세미나와 여름 수유너머 정치철학 강좌에 접속하면서 획득한 스피노자와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한 관념을 바탕으로 보조발제를 작성해볼까 했지만 본인의 역량 미달 - 발리바르의 철학적 작업에 대하여 유한하고 한정된 약간의 관념만을 가졌으며 그것들마저도 타당한 관념이 아니라는 것 - 으로 인해 다른 학인들에게 내놓을 만큼의 수준을 갖춘 텍스트를 작성할 수 없었다. 세미나 자리에서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발제문의 주제에 대해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서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발리바르는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론을 전개하면서 마주하게 된 아포리아로 인해 발생한 난점, 그 난점으로 인해 공백으로 남아있는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이론적 보충/확장 가능성을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하고자 한다. 요약하면 개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표상하는 것, 즉 대중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항상-이미 집단적 가상의 형태들 속에서이다. 이 상상적 인식은 에티카 제 2부의 첫 번째 종류의 인식-부당하고 혼란스러운 인식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삶의 자체를 이루는 인간학적 조건이다. 이렇게 피상적인 결과만을 사고하고 그것을 낳은 원인을 배제하는 인식 - 현실적인 실존적 조건들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상상적 표상들과 관계하는 인식, 이것을 실재하는 세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재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무지와 이성적 인식, 이성과 가상, 수동과 정념 등등의 개념들로 형성되는 주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발리바르 텍스트 또한 난해하고 제 이해에 많은 오류가 있음을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기에 발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학인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조만간 완성하여 꼭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미나를 하면서 우선적으로 느꼈던 것은 에티카에서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개념들에 대해 보다 면밀한 검토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가령, 세미나에서 다루어졌던 정의 4의 타당한 관념과 참다운 관념의 차이라던가 정의 7에서 사용된 개체와 개물과 같은 개념들이 의미적으로나 용법에 있어 다르게 쓰였기에 그 차이에 대해 독해하는 과정에서 주의깊게 생각해보아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점에 있어 세미나를 하면서 개념에 대한 혼란을 바로잡아주셨던 몽사선생님은 에티카를 어떻게 읽으셨는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리 7객관적으로의 보다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영문과 라틴어를 대역하며 독해한다는 것에 대한 수고스러움이 느껴졌으며 또한 철학 텍스트를 대할 때 들여야 할 정성과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다음으로 세미나를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정리 9에 대한 내용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양태들은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 지라도 우주 전체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결과가 담겨 있다는 내용은 나의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사물들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해주는 타당한 관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양태들이 연결되고 계열을 이루어 구성된 세계, 간접 무한양태로서의 전 우주의 얼굴을 작은 사물로부터 출발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스피노자의 사유는 어떤 청량함마저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양태론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과 변양의 개념, 강밀도와 의지에 대한 논의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세미나에서 논의의 중심이 되었고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것은 정리 13이 아니었나 싶다. (... 정말.. 13장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머릿속으로는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 같기도 한데 글로 쓰려니 정말 어렵습니다.....노트북만 한참동안 노려보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는지 모릅니다..)앞에서 서술한 내용들 말고도 많은 논의들이 세미나에서 있었으나 논리적으로 일관성있게 기술할 수 있을 만큼 그 논의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을, 글을 쓰는 지금 해 본다. 또한 에티카를 읽으며 신체의 능력이 감소한 듯한 슬픔에 잠긴 나머지 세미나에서 내가 이해한 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다 적극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해야겠다는 것을 다짐해본다.

 

마지막으로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을 공부하면서도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인데, 그의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에티카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의 정의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개념들과 절합시키는 가운데 그의 철학을 공부하는 나의 리듬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해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작성한 후기는 에티카에 등장하는 개념들과 그 내용들에 대한 정신의 관념들을 비록 고귀하게서술해내지는 못했지만 그것들을 언어적으로 풀어내며 변용시키는 가운데 기존의 이해를 반성하고 회의하며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물론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인식이 초래한 잘못된 용법의 사용이 많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을 명석판명한 이성적 인식으로 대체해 나가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댓글 '5'

몽사

2012.01.27 09:40:38
*.70.5.172

ㅎㅎ 정말 '드문' 후기다. 재미있었어. 수고했다. 

사비

2012.01.27 14:59:16
*.155.201.8

ㅋㅋ후기 같은 반성문이로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종윤

2012.01.27 17:04:39
*.205.30.161

네......반성문 같은 후기이기도 하구요..^^

진백

2012.01.27 17:44:24
*.37.152.179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솔라리스

2012.01.30 00:08:53
*.154.166.245

종윤, 이미 스피노자에게 반쯤은 잡아먹힌 듯...흐흐

독자를 당혹하게 하곤, 그 사이에 얼른 달라붙어 슬그머니 그 리듬을 타면서

신체의 리듬을 바꾸어 놓는 스피노자의 변조능력이라니...^^

그러나 그것은 알고 보면, 그를 읽고 이런 식으로 쓰면서 잠식되어가는 자의 능력이지. 호호

나중에 뭐가 되어 나올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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