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사실 페미니즘에 별로 관심 없었습니다.
국제워크샵을 하면서 타니가와의 '집단적 에로스'라는 용어의 용법에 끌렸고,
그것은 페미니스트들의 독특한 적대적 태도(개인적 느낌일지도 모릅니다)에
거부감을 갖던 나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적대적일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사비는 타니가와가 반페미니즘적이라고하고,
국제워크샵기간동안 요네타님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의 삶은 반페미니즘적이었던 듯도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상하게 그의 글에서 맴돌던 페미니즘적인 색깔들이 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어서
쉽게 그 글과 그의 생각들을 놓아버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푸코가 말한대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제가 살면서 나름 뭔가 해보겠다고 깨작대면서 느꼈던 한계들을 그는 참 잘 설명해 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를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고,
사회 속에서 느끼는 한계들을 그의 생각의 틀을 따라 분석하고 해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푸코가 여성억압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어떻게 접근했을까 생각해봅니다.
혹시 그라면, 여성억압의 문제가 사회든 역사든 아니면 생물학적인 문제이든
어느 한가지 국면에서 설명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억압을 형성하고 작동하는 거대한 힘의 방향이 있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 힘을 생성하는 국소적 지점들은 시대나 사회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그 지점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힘의 방향은 특정한 합리성만들어 가면서 작동하겠지요.
지금은 로즈마리 통의 책을 읽고 있고,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이어 맑스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까지 읽었습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공적영역 진출의 불평등과 주로 대결합니다.
그 원인을 교육에서 찾기도 하고, 가사나 육아문제에서 찾기도 하며,
사회적인 섹슈얼리티의 형성과정이나 생물학적인 성별자체에서 찾기도 합니다.
이런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성평등의 쟁취 방법을 보면 남성을 주적으로 설정한 듯도 싶지만,
그들이 남성을 주적으로 설정한것은
'남성과의 대결이나 경쟁에서의 불리한 위치'라는 여성의 현실에 국한 된 듯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들이 남성을 주적으로 설정한 것과는 이상하리만치 아이러니하게
그들은 간절히 '남성-되기'를 갈망하는 듯이 보입니다.
맑스주의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그래도 좀 더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아보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낸 구조적인 문제는 늘 계급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여성억압의 문제라 한들 현대사회에서 여성들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한,
여성문제가 자본주의의 문제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계급이나 경제구조의 문제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맑스주의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구조의 파악은 뭔가 너무나 심플하고 허전한 느낌입니다.
로즈마리 통의 책에는 수많은 페미니즘들이 있습니다.
아직 접하고 읽어내지 못한 페미니즘들이 수두룩 합니다.
어쩌면 그 숱한 사상들은, 현실속에서 숱하게 많은 지점에서 '여성억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즉 그렇게 숱하게 많은 국소적 지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이 세미나를 하면서 이야기 하는 가정, 친구관계, 사회생활들의 구체적인 문제는
물론 여성억압의 구체적인 현실들임에 분명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국소적 현실들을 재확인 하는 것이
우리들의 세미나의 목표나 결과가 되지는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
로즈마리 통의 책 한권을 다 읽어 갈 무렵에는, 여성억압이라는 현실을 가능케하는
사회의 숱하게 많은 국소적 지점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만들어낸 합리성의 구조를
조악하게라도 그려볼 수 있을까요?
그때는 저도 타니가와가 말한 '집단적 에로스'의 실천으로의,
그것과 힘의 방향을 함께하는 실천 영역으로서의 적략적 지점과 활동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까요?
흠.... 일단은 로즈마리 통의 책을 열심히 찬찬히 꼼꼼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읽어 봐야겠지요?
매주매주 점점 더 흥미로울 여성주의 셈나 퐈이링~!!!



역시 꼬꾸댁님의 후기! 요새는 홈피에 '꼬꾸댁'만 있으면 저도 모르게 클릭을 하고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