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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라! 생이여 / Violeta Parra, 'Gracias a la vida'

조회 수 3311 추천 수 0 2010.08.24 17:12:56

 

 

 

 (비올레따 빠라의 원곡은 유투브에 영상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부득이 메르세데스 소사의 'Gracias a la vida'를 링크해놓습니다. 음악만을 감상하시고자 하시면 '이곳' , 비올레따 빠라의 다른 영상을 보고자하면 '이곳'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떠나자니 찝찝하고, 안떠나자니 서운한 그 이름. '여행'

 

 

생각을 서걱서걱 잘라 먹으면서 섣부른 결론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말은 금세 흩어지는 것. 잡아 두지 않으려 했다. 공중에서 풀풀 날려 어디에선가 시가 되었으면 바랐다. 여행이란 잃어버린 것을 찾는 과정이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원래 시인이었고 선생이었고 혁명가였고 신이었는데, 다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뜨거운 여행'中, 박세열)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는 행복한(?) 고민. 즉, 여름 휴가때 어디로 떠날 것인가를 두고, 올해는 유독 많은 고민을 했다. 이른바, '블랑쇼식의 여행'. 여행지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보다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찾는' 시간들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무엇보다도 가장 컸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챙겨보게 된 'EBS 세계테마기행 베트남' 편... 한때 오지 마을이었던 베트남 북부의 '사파' 지역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전통적으로 모계 사회 중심이던 소수민족 여인네들이, 들이닥치는 여행자들로 인해, 더이상 전통적인 경제구조가 아닌, 구걸과 다름 없는 수공예품 판매에 자신들의 삶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풍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잘사는 나라의 자본가들이 그들의 노동자들에게 선심 베풀듯 던져주는 '여름 휴가 여행'이라는 이 씁쓸한 당근은, 머나먼 나라 오지의 부족들에게까지 말 그대로 하나의 '폭력'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윤리적인 고민까지 더해진 상태로, 어떻게 하면 기존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찾는 과정으로서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절대 가볍지 않은 고민들을 껴안은 채로 지난주 지리산 일대를 다녀왔다. 한때 지리산 주변 마을들 중 가장 높은 경제 자립도를 유지할만큼의 충분한 양의 다랑이 논을 보유하고 있던 지리산 창원 마을에는 이른바, '생태체험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현대식 건물이 한창 공사중이였다. 이처럼 최근 급속도로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지리산 둘레길 주변 마을에는, 한때 '(오지 마을) 가로등 설치 공적비'까지 세워졌던게 무색할만큼, 현대식 팬션 내지는 카페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제주 올레길로 시작된 '걷기 여행' 열풍은 비단 지리산 뿐만 아니라 여러 지자체에 '둘레길 사업'을 촉진시켰던 것이고, '생태 여행' 내지는 '공정 여행'을 지향하는 프로그램들이 병행되어 진행중이긴하나, 여행 자체가 지니는 그 한계는 분명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trail1.JPG trail2.JPG

 

 

‘원래 이 마을에는 민박이란게 없었어. 워낙에 찾아오는 사람이 적었으니 민박이란걸 칠 필요가 없었지. 근데 요 위엣 길이 생기고 나서부터, 사람들이 많이 오니, 너도나도 민박을 쳐. 시골에서도 잘사는 사람들은 도시 못지 않게 잘 지어놓고 살지. 그런 집들이 민박을 치는거라.. 나? 우리집처럼 화장실도 없는 집은 힘들어. 요새 젊은 사람들이 어디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있고 싶어하나.’ (지리산 매동마을에서 만난 한 할머니와의 대화 中)

 

 여행을 끝내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있자니, 여행지에서 만난 얼굴들이 하나 둘 추억처럼 떠올랐다. ‘하룻밤만 지나면 데리러 온다던 엄마’를 오늘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쌍둥이 자매들.. 다음에 오면 꼭 당신네 집에서 자고 가라며 막 따온 토마토를 손에 꼭 쥐어주던 할머니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는데, 마침 엠피쓰리 플레이어에서 공교롭게도 '비올레따 빠라'의 'Gracias a la vida'가 흘러나왔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부르는 'Gracias a la vida'

 

 

 칠레인들에게는 비올레따 빠라(Violeta Parra)의 'Gracias a la vida(고마워라! 생이여)'라는 곡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파블로 네루다와의 극적인 단일화(?)에 성공 후 집권했던 아옌데 대통령은 1973년 피노체트 군부의 대통령궁 피폭으로 사망하게 되고, 이후 칠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 또는 혹독한 고문을 견뎌내야만 하는 악몽같은 시간들을 겪게된다. 그 죽음과 같던 공포를 극복하게 해준 희망의 노래는 다름아닌 ‘Gracias a la vida’ 였다.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가족과 친구들이 사무칠 때나,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만큼 혹독한 탄압에 시달릴 때마다, 칠레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생에게 감사하는 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훗날, 이 곡은 아르헨티나 포크의 신화,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가 오랜 스페인 망명 생활 이후, 아르헨티나로 귀국해 가진 첫 공연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른 곡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포크가수이자 저항운동가인 존 바에즈(Joan Baez)에 의해 다시 불려지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저항의 노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violeta_parra_0.jpg

 

 

1917년 칠레의 산 카를로스에서 태어난 비올레따 빠라는 칠레의 대표적인 민중 시인 니까노르 빠라(Nicanor Parra)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어릴때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밤무대를 전전하며 생계를 꾸리던 중, 오빠의 권유로 1953년부터 칠레 민요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혼자서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칠레대학 민속연구팀보다 더 많은 노래를 채집하는 억척스러움을 발휘했던 탓에, 결국 그녀가 수집한 칠레의 민요는 훗날 인류박물관과 유네스코에까지 기록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평탄치만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유럽에서의 칠레의 민요를 알리는 데 성공한 이후, 이 정도면 칠레도 자신들의 전통 음악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확신으로 돌아온 고향.. 하지만, 산티아고 외곽에 차려놓은 그녀의 천막까지 찾아오는 이는 거의 없었고, 약속했던 정부의 지원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다. 되풀이되는 개인적인 불행에다, 건강마저 여의치 않게 된 그녀는 66년 ‘Gracias a la vida’를 녹음한지 몇 달만에, 결국 스스로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신의 기타 위에 고꾸라진 채로 생을 마감한다.

 

 

 

violeta_parra_1.jpg violeta_parra_2.jpg

 

 

 

 

그럼에도, 생이여. 고마워라!

 

 

 단순히 비올레따 빠라가 칠레 민중들의 음악을 연구했다는 사실만으로, 칠레 음악의 '어머니'로 추앙을 받는 것은 아닐 듯 싶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타니가와 간은 '공작자'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말하지 못하는 민중들의 말문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기존 지식인의 언어로 민중을 대변하려는 태도를 거부해야만 하는 자로서의 공작자와 시인을 이야기한 바 있다. 비올레따 빠라는 '붉은 흙 빛'이 가득한 민중 특유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것이고, 그 힘들었던 길의 끄트머리에서 자그만치 '고마워라! 생이여.'를 발견했던 일종의 '공작자'였을지 모른다. 그녀의 이같은 진심이 민중들에게 전해졌기에, 훗날 피노체트 군부 정권의 독재 하에 '목소리를 잃어야만 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겨울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황지우의 시 마냥, 삶이란 마치 고통을 월세로 지불하듯, 꾸역꾸역 버텨내야만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러했던 내게,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Gracias a la vida'의 의미는 유독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무거운 머리로, 그  어떤 결론도 성급히 맺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걸었던 길.. 여행자의 시선이란, 결국 거대한 아이러니를 등에 엎은 일종의 '폭력'일 수 밖에 없는 것임에도, 그 길에서 만난 모든 얼굴들은 '생은 숭고하리만치 아름답기에 감사해야한다''라는 메시지를 하나같이 가슴으로 던져주었다. 여행지에서 마주한 그 수줍던 타자들이 내 안의 '무엇'인가를 무너트린 것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낯설은 '젊은' 말 벗에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지리산 할머니들의 모습과, 비올레따 빠라가 들려주던 칠레 민중들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뒤죽박죽 헝클어져,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감성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글/ 수유너머N,  김은영  

 

 

 


댓글 '5'

유심

2010.08.26 20:55:42
*.231.132.79

은영 님 항상 멋진 음악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영 님의 따뜻 뽀죡한 문체에 퐁당 빠질 것 같슴다.

 

으뇽

2010.08.27 09:16:31
*.152.203.183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언제나요.. ^^

키티손

2010.08.27 22:00:49
*.15.208.206

Gracias a la vida 노래 가사 찾아보니 정말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고마워라! 은영이여.

은선

2010.08.29 12:47:50
*.231.132.79

아 이분 노래가 그런거였군 ㅎㅎ 아옌데 팬이예요. 네슬레만 아니었으면 남미에 평화가 왔을수도....  

miffazin

2010.08.29 20:13:18
*.237.168.92

아...이렇게나 가슴이 먹먹한 여행후기는 난생 처음입니다....여행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어색할 만큼 게으른 관광에만 매달렸던 지난 시간이 타자에 대한 폭력이었다는 것이 가슴을 후려치는군요...은영씨 말대로 어떠한 결론은 내리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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