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N웹진

주작인을 아시나요? (후편)

조회 수 2306 추천 수 0 2010.08.11 16:33:55


8 17일 화요토론회 안내

 

주작인 (周作人)을 아시나요? (후편)

 

글/ 박혜정

 

2.jpg   

 

                                                                   주제: 주작인을 아시나요? -주작인의 삶과 문학-

                                                                   발표: 박혜정 (수유너머N)

                                                                   일시: 8월 17일 저녁 7:30

                                                                   장소: 수유너머N (아현역 2번출구)

                                                                   참가비: 없음

 

주작인은 청()나라 광서(光緖)1(1885)에 절강성 소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이름은 괴수(槐樹), ()는 성표(星杓)입니다. 위로는 형 주수인(周樹人(노신): 1881~1936)과 아래로는 동생 주건인(周健人, 1888~1984)이 있습니다. 동생 주건인에 따르면, 주작인은 결코 집안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일이 없었던 매우 온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주작인이 8살이 되던 해, 그의 조부가 친척의 과거시험 부정에 연루되어 집안은 점점 몰락해갔고, 그의 부친이 1896년 병으로 사망하면서 집은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이 무렵 어린 노신과 주작인은 집안의 환난을 피해 외가에 머물면서 과거 시험을 위한 전통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주작인이 13살이 되던 해에는 형을 따라 향시에 응시했지만 모두 낙방했습니다. 그리고 1901년 먼저 가 있던 노신을 따라 남경수사학당(南京水師學當)에 입학해 서양식 교육을 받게 됩니다.

 

주가네가족.jpg     yanfu.jpg

주가네 가족(아래 왼쪽이 주작인, 오른쪽이 노신, 윗 줄 오른쪽이 주건인)/ 엄복(嚴復) 

 

 

주작인은 남경시절 엄복(嚴復, 1853~1921, 청말 민국초기의 사상가)이 번역한 <진화론>과 같은 이론과 서양 문화를 접촉하며 서구의 신문학 속에서 지혜와 새로운 원동력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서양 서적을 탐독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번역하고, 나아가 단편소설을 창작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시절 주변에 산재해 있는 서양 문물을 통해 문학 외 사회적 의의를 담고 있는 학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본 유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주작인은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일본유학생활을 했는데, 이 시기는 주작인에게 학문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출판계는 서구의 사상과 문화 조류에 대해 대단히 민감했고, 신서(新書) 빠르게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작인은 유학기간 동안 수많은 책을 접하며 다방면의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특히 인류학 및 민속학, 신화학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에 주작인은 이 후 그의 대표적 문학관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문학”, “인생의 문학”, “개성의 문학의 기초를 굳건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주작인은 일본을 2의 고향이라 부르며 지대한 애정을 표시하고는 했는데, 그의 문장을 읽어 보면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일본의 간결하고 소박한문화가 그와  잘 맞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무사노코지.jpg

무사노코지 시네야스(武者小路实笃)

 

그리고 유학 당시는 아니었지만 주작인이 받아들이고 있는 무정부주의를 잘 실현한 일본의 신촌주의(新村主義)도 그가 일본에 감탄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신촌운동은 1918무사노코지 시네야스(武者小路实笃)를 비롯한 일본 백화파(白樺派)작가들을 중심으로 추진된 것인데, 도시적 자본주의의 문명을 거부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이상적인 공산사회를 꿈꾸며 공동 노동에 의한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던 공상적 사회주의 운동입니다. 주작인은 191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며칠간 직접 신촌주의를 경험해보기도 했는데, 매우 만족하여 쓴 문장만도 여러 편입니다. 주작인이 신촌주의에서 발견한 것은 평화로운 방법의 개혁을 통한 이상적인 인간 사회의 달성이라는 비폭력적 평화운동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와 주작인은 1911년 일본에서 귀국해서 몇 년 간 아동학, 동화학에 관한 연구와 소개 및 그리스 신화에 대한 소개와 번역을 하다가 1917년에 북경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어 북경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북경은 당시 정치의 중심지이자 1919 5.4신문화운동의 발원지로서 <신청년(新靑年)>을 중심으로 반유교, 반전통 사상계몽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작인은 번역 활동을 꾸준히 하다가 1918년 그의 생애 가장 중요한 논문인 <인간의 문학(人的文學)> <평민의 문학(平民文學)> 등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도 <사상혁명(思想革命), 1919>, <신문학의 요구(新文學的要求), 1920> 등을 발표하며 자신의 인간의 문학의 체계를 갖추었고, 이는 5.4신문화운동의 사상 혁명에 있어 이론적 기초가 다져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19 5.4신문화운동을 전후(前後)로 하는 시기가 주작인의 일생에 있어 가장 활발한 사회 활동을 했던 때입니다. 신촌운동을 열렬히 주장하고 직접 체험하고 온 것도 이 때입니다. 하지만 1921년 초, 주작인은 병을 얻어 산으로 들어가 요양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의 사회적 계몽가로서의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와 비교적 객관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5.4운동이 실패하고, 신촌운동에 대한 꿈도 깨지면서 주작인은 그의 중심 사상이었던 인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점차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절대적인 위치에 올려 놓는 개인주의자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 당시 발표한 문장으로는 <자기의 정원(自己的園地), 1922>, <개성의 문학(個性的文學), 1921>, <귀족적평민적(貴族的平民的), 1922>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제목의 변화만 보아도 그의 사상적인 변천을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주작인이 본래 그리스 신화나 부녀자, 아동 등 그 당시에는 비교적 주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기는 했지만, 이 또한 중국의 개혁과 연관 지어 이끌어 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주변적 연구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자신의 취미(趣味) 때문에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루쉰.jpg 

노신(1881.9.25~1936.10.19)

 

이렇게 주작인은 더 이상 문학계, 사상계에서 중심적 인물이기를 포기하고, 자기 스스로를 주변으로 몰아 개인의 가치와 해방을 답습해 나가는데 몰두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926년 발생한 한 사건은 주작인을 더욱 침묵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바로 그 유명한 노신과의 형제불화 사건입니다. 형제 불화의 원인에 대해서 당사자들이 확실히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는 이를 파헤치는 논문이나 문장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이유로는 주작인의 부인 羽太信子와 노신과의 관계였습니다. 당시 주씨 형제는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작인의 부인이 낭비벽이 매우 심해 당시 노신과 주작인의 급여가 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신은 항상 돈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이 골이 깊어져 어느 날 큰 싸움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두 형제의 사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화 사건 이 후, 주작인은 겉으로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였지만, 후에 이들을 공부하는 학계에서는 그의 이후의 작품들에 회상을 하는 내용이 많다는 점을 들어 이는 노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년에 접어든 주작인은 1928년 문을 걸어 잠그고 독서를 하겠다는 폐호독서(閉戶讀書)’를 발표하며 더욱 급격히 시대적 조류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활동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본에 대한 연구를 하며 가끔 미문(美文)을 쓰던 어느 날 중일전쟁(1937)이 발발합니다.

 

 주작인.jpg

1946년 7월 한간재판 법정에 출두하는 주작인

 

전쟁 발발 당시, 북경이 점령하는 상황에 이르러 대학과 대학 교수들은 모두 남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하지만 주작인은 북경에 남아 일본의 점령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추측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그가 평소의 안락한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과 그와 일본과의 특수한 관계를 좌익문예가들이 이용할지도 모를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당시 주작인은 일본이 원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문장도 써냈으며,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했다 하니 확실히 친일파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에 그는 문화한간인으로 분류되어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 4년간 감옥에 있던 것을 빼고는, 이전에 해왔던 대로 주변으로 물러나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석방 이후, 그는 전통사상을 완전히 배제하자던 초기 때와 달리 전통문화 속에서 신문학의 뿌리를 찾자며 유가적 인문주의를 이야기합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모든 유가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며 하() 나라의 우()임금과 순() 임금에서부터 유가의 뿌리를 두고 공자와 맹자까지의 원시 유가는 건전하므로 거기에서 해답을 찾아 현대에 맞는 유가를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당시 이 이론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949년 석방되어 주작인은 상해로 거처를 옮겨 말년을 그리스와 일본 문학의 번역과 엄청난 양의 창작 활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문장에 대해 전기(前期)의 주작인의 문장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기는 했지만 생명력이 있었는데, 그에 반하여 후기의 문장은 성숙하지만 생명력은 어느 정도 잃었다고 평가를 합니다. 주작인은 1966년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 차례의 어려움을 맞이하고, 1967 5 83세의 나이로 병사하기 전까지도 번역 활동과 연구 작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images.jpg

주작인 전집

 

한 사람의 인생 중에서도 생각의 변화가 복잡했던 주작인에 대해 짧은 분량으로 알아보느라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것 같습니다. 사실 평생 동안 40여권으로 엮인 문장을 써냈고 내적인 변화를 크게 겪었던 주작인을 몇 장의 분량으로 또 몇 시간으로 요약해서 설명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8 17일 화요토론회에서는 사회적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계몽가로서의 주작인과 휴머니즘을 중국 문학에 끌어와 인간의 문학을 제창했던 문학가로서의 주작인, 그리고 그가 이야기한 인간론을 통해 그의 사상적 변천을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imagesCA0ZJN77.jpg

 

* 이 글에 나오는 인명 및 지명은 한국식으로 표기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댓글 '1'

vizario

2010.08.11 19:28:14
*.167.63.175

토론은 연구실 주방장 에르미~ 발표와 토론자가 모두 나긋나긋(?)하신 여성분들이시군요!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 덧입혀지는 소리들의 정치성ㅣ NIN "Closer" imagemoviefile [3] 이파리 2010-09-14 3931
38 9월 새로운 세미나 소개_수학 세미나/ 중국정치사상사/ Rock 음감회 imagefile [4] 9월 신규 2010-09-10 2808
37 수유너머N 이사갑니다! imagefile [6] 꾸냥 2010-09-06 5824
36 요네타니 선생님의 편지 <농밀한 시공간의 공유에 감사> imagefile [6] 국제팀 2010-09-06 3218
35 달팽이 공방은 '아무 일'도......... imagefile [12] 관리자 2010-09-01 4675
34 고마워라! 생이여 / Violeta Parra, 'Gracias a la vida' imagemoviefile [5] 이파리 2010-08-24 3311
33 [벤야민프로젝트 ]"사유이미지"_꾸냥 <'가까움'을 통해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기> image 관리자 2010-08-19 2477
32 최고의 영화-천안함의 진실 movie [2] 은숀 2010-08-19 3362
31 연대를 구하되,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타니가와 간 국제워크숍에 초대합니다 (20~23일) imagemoviefile [3] 관리자 2010-08-13 3022
30 [예술과 정치]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2-디자인 서울의 어머니 '청계천' image [1] 은선 2010-08-13 2686
29 작가선언 6.9 imagefile [2] 은선 2010-08-13 2845
28 주작인을 아시나요? [전편] imagemovie [1] 관리자 2010-08-12 2333
27 [벤야민 프로젝트] "일방통행로"_송고운 < 습관 > imagefile [1] 에르미 2010-08-12 2239
» 주작인을 아시나요? (후편) imagemoviefile [1] 관리자 2010-08-11 2306
25 [화요토론회] 주작인을 아시나요? (전편) imagefile [2] 박혜정 2010-08-05 2254
24 <벤야민 프로젝트> 벤야민이 듣는 세계의 외침과 속삭임 imagefile [3] 관리자 2010-08-05 2504
23 이포보 고공농성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강에 한 번 만 가보세요. image [3] 리슨투더시티 2010-08-02 2249
22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1편 –디자인 서울의 신호탄: 청계천의 소라 image [2] 은선 2010-07-29 2175
21 <벤야민 프로젝트> 세미나 소개와 첫 번째 에세이 이야기 imagefile [1] hermes 2010-07-29 2132
20 <수유너머N을 다큐멘터리로?> 세 감독과의 인터뷰 imagefile [3] 관리자 2010-07-28 2276

 

120-828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218-23 이스턴빌 201호 수유너머N / 전화 (070)8263-0910 / 트위터 @nomadist_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