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벤야민 프로젝트 -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 에세이 02 (hermes)
앞으로 우리가 벤야민에게 접근하는 몇 가지 ‘일방통행로’들을 생각해 보자.
* 벤야민과 신비주의
먼저 이 구절, “(벤야민은) 어떤 이미지나 충동, 낯선 욱신거림에 이끌려 노트 여백에 주석을 달았고, 노트 여백은 페이지 위에 펼쳐진 문자들의 소용돌이와 함께 정밀한 언어로 채워져야만 했다. 비평가로서 그의 장점은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되는 논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의 순간적인 폭발에 있었기 때문에, 에세이는 그에게 있어 최고의 형식이었다.”(186) 벤야민에게 접근하는 통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길이 바로 신비주의 혹은 신학적 해석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그의 통찰력 내지는 직관을 말하는 부분들은 그의 친구였던 신학자 게르숌 숄렘의 시각이 담겨있다. 우리에게 멀고도 낯선 ‘카발라’적 유대신학이라는 것이 벤야민을 다소 범접하기 힘든 신화적 인물로 그리게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후기의 맑스주의적 입장과 비교해 보아야 할 듯.
* 벤야민과 유럽의 전통주의
“놀랍게도 벤야민은 침착하게 그의 서류 가방 안에서 괴테의 시집을 살짝 꺼냈다. 그는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석회암에 기대어 책을 읽었고, 15분이 지나자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호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호세는 이제까지 한 번도 벤야민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328) 이 구절을 읽을 때는 정말 나도 모르는 탄식이 배어나왔는데, 이 극한 상황에서 괴테를 읽는 사람은 괴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물론 소설 특유의 긴장감 형성을 위해 각색한 부분이 많겠지만) 한나 아렌트가 내렸다는 벤야민에 대한 평가, ‘최후의 19세기 유럽인’ 혹은 ‘보수적 문화혁명가’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에로스
“제발, 더 좋은 주제들이 많잖아. 괴테에 대해 생각해.”
“당신이 더 중요해.”
벤야민에게 있어서 에로스는, 혹은 연인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은이는 그의 연인들이 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건 자명한 듯 보인다. 그러나 흥미로운건 이 ‘황폐함’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 황폐함이 벤야민이 글을 쓰도록 만드는 자양분이었다면? 아. 이 말을 그냥 그런 진부한 말, ‘고통에서 창조가 발생한다’라는 단순한 명구로 환원시키지 말자. 그의 연인들은 양가적인 존재이다. “아샤 라시스는 벤야민의 삶을 폐허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심원하고 에로틱한 사랑의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특별한 사랑은 욕망을 불러왔고, 욕망은 그를 소진시켰다.”(195) 연인들로부터 받은 고통과 폐허 -> 사랑의 경험 -> 욕망 -> 소진-> (다시 창조로?) 이 단계가 그의 글과 사유의 전개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친것인지 궁금하다. 소재적으로 혹은 내용적으로 에로스가 벤야민의 글 속에 담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