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N웹진

파리꼬뮨, 광주, 산업사회의 인간소외, 마을, 맑스주의, 공동체, 꼬뮨의 제빵사, 수평적 소통공간, 심상정, 들뢰즈, 기본소득, 사회주의, 대안, 21세기 대안사회의 경제철학-기존 ‘좌파 운동’과 ‘지속 가능한 진보’의 등장과 연관하여, 이주노동자, 아나키즘, 공산주의, 돼지엄마의 블로그, 이진경...
익숙한 말도 있고 낯선 말도 있다. 검색창에 ‘꼬뮨’ 혹은 ‘코뮌’, ‘꼬뮨주의’를 쳤을 때 나오는 말들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뉴타운, 삼성, 한나라당, 자본주의, 4대강사업, 세종시 등과 맞서는 지점에 있는 것들로서 2010년 6월 MB임기 절반을 남겨둔 현시점에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모아놓은 듯 보인다. 6월 14일 아침에 있었던 MB의 독백에 기분이 잡친 이라면, 초고속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는 이라면,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모색하고픈 이라면, 주저 없이 오는 7월 3일부터 수유너머N에서 진행되는 철학자 이진경의 ‘일반화된 꼬뮨주의를 위하여’를 들어보시길 권한다. 혁명이라는 것은 국가를 전복하는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삶의 방식,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구성하고 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의 생각을 철학적 개념이자, 대안적 삶의 방식인 ‘꼬뮨주의’를 중심으로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자면 현재 북아현동에 위치하고 있는 수유너머N은 북아현동 재개발관계로 이번 강의가 끝나는 시점이면 이사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을 것이다. 올 겨울이면 사라질 북아현동 자락의 수유너머N을 기억하고 싶은 이들이 있으시다면 오시기를. 토요일이 안 되시는 분들은 월요일[문학과 예술 사이의 세계: 모더니티와 몰락의 풍경들]과 화요일[정치를 둘러싼 사유의 전투 - 유물론적 정치철학의 계보를 위하여]강좌도 준비되어 있다! [일반화된 꼬뮨주의를 위하여]강사 이진경 인터뷰 <작년 가을 '외부 혹은 사유의 정치학' 강좌때의 모습> Q ‘일반화된 꼬뮨주의를 위하여’는 작년가을 ‘외부 혹은 사유의 정치학’과 올해겨울 ‘외부성의 정치학을 위하여’에 이어 N에서 하는 세 번째 강좌다. 앞서 한 강좌들과 연계성이 있나? 아니면 어떤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강좌이신지? A. 꼬뮨주의는 자본주의의 외부이기에 외부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이번 주제는 외부성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꼬뮨주의를 중요한 화두로 들고 공부를 해왔다. ‘맑스주의와 근대성’에서 이 문제의식을 정리한 적이 있었고, ‘꼬뮨주의 선언’도 있었고, 다른 책에서도 정리를 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와 비슷하게 공부해온 것들에 대한 중간정리를 하려고 한다. Q. 강의제목은 왜 ‘일반화된 꼬뮨주의를 위해서’인가? '일반성'같은 개념은 잘 안 쓰실 것 같다. A. 보편성과 일반성을 구별해야한다고 본다. 보편성은 어떤 것들이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는 법칙들인데 반해 일반성은 존재론적인 평면성이다. 예를 들어 인간과 기계의 '생명'이라는 것을 놓고 그것을 추상해서 극한까지 밀어붙여보았을 때 그 안에 심연이나 차별은 없다. 오히려 하나의 평면을 이루는, 차별이 사라지는 지점이 있다. 내가 말하는 일반성은 들뢰즈적 의미로서의 일관성에 가까운 것이다. 만약 인간의 해부학이 원숭이의 해부학 연구에 쓰인다고 했을 때, 인간의 신체에 원숭이의 신체를 때려 맞추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지점까지 사고해야 한다. 사회구성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구조주의자들은 노동수단 등 생산수단으로 모든 요소들을 환원했다. 이런 방식은 사회구성체를 논할 때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사회구성체를 생각할 때, '어디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할 것인가?' 그 지점이 바로 일반성이라고 생각한다. Q. 강좌 소제목들이 공동성과 특이성, 추상기계, 생명의 정치학 등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소제목들을 중심으로 강좌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신다면? A. 강의 많이들 들으시라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들로 정했다(웃음). 일단 꼬뮨주의를 존재론적 입장으로까지 끌고 가서 사유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꼬뮨주의적 존재론 혹은 존재론적인 꼬뮨주의. 이런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개체는 중생이다’라고 하는, 생명과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결론인데, 이것이 그 출발점이다. 중생으로서의 집합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개체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를 가능케하는 것이 공동성이다. 이 공동성은 어떤 특이점들을 통해서 구성된다. 여기까지가 철학적인 차원에서 꼬뮨주의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그 뒤에 세 강 정도는 역사이론,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꼬뮨주의이다. 사회구성체의 추상기계와 코뮨주의는 사회구성체라는 것과 꼬뮨주의를 어떻게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생산이론의 경우, 생산의 개념을 경제학적인 것을 넘어서 확대하고자 했을 때의 이야기다. 내 식으로 하자면 기계주의적 생태학 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텐데, 기존 정치경제학과 생태학에 대한 비판점들을 가지고 이론적인 일관점을 갖는 지점들을 찾아냈다고 본다. 이후에 나오는 생명의 정치학은 꼬뮨주의가 생명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꼬뮨주의는 휴머니즘을 넘어서 고민되어야 한다. 인간이 아닌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권리. 인권을 넘어서는 새로운, 좀 더 일반적인 권리를 사고해야 한다. 꼬뮨의 윤리는 꼬뮨주의와 관련해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구체적인 지점들에 대한 건데, 예를 들면 휴머니즘을 넘어섰을 때 인간과 생명 기계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선물 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윤리라는 관점에서 고민한 것이다. Q. 어떤 분들이 와서 들으면 좋을 것 같으신지. A. 꼬뮨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 꼬뮨주의에 대해 대충 안다고 생각하지만 소제목과 강좌소개를 보았을 때, 한 눈에 안 들어오는 사람들. 공동체나 꼬뮨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꼬뮨주의에 대한 강의를 많이 했지만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Q. 오호, 딱 나 같은 사람이 들으면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A. 소데스네(일본 다녀오신 후로 자주 쓰시는). 나는 이론적으로도 코뮨에 대해 고민해왔고, 실천적으로 경험한 것들도 있고 한데, 그 속에서 안주해서는 안 되는 지점들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스스로는 끊임없이 내부화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내부화되는 경향과 끊임없이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개념들 중에 ‘이건 아닌데’ 싶은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들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생각이다. 글 꾸냥/ 사진 유심




<정치를 둘러싼 사유의 전투>는 화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이예염....^^